결국엔 모두가 기나긴 이원론의 싸움이구나. 마치 파르메니데스 시절부터 시작된듯한.
특히 물질주의는 존재론적 사고와 결과론적 사고를 부추기고, 정신주의는 의미 중심의 사고와 합리주의(합리주의+합리화까지)를 부추긴단 말이지.
근데 결과론적 사고가 오용될 경우, ‘남녀가 만나 자식을 낳는 것이 생명체의 설계된 목적이다’ 이렇게 된단 말이지. 이게 개인적인 신념 근거로서는 꽤나 그럴듯한 논리가 될 수 있지만, 그걸 바탕으로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며, 네 삶은 틀린 삶이다, 이런 소리까지 나아가면 영 밥맛이 됨.
그리고 그런 사고 방식은 흔히 우리 주변의 종교 광인들이 택하기 좋아하는 생각 방식임. 자신이 응답받았다 커니, 기독교인들이 잘 산다 커니, 하며, 결과로 과정을 정당화하길 즐겨하려 함. 사람이 한 1000명 모이면 그 중에 한 사람 성공한 사람도 있겠지. 근데 그걸 ‘기도해서 복 받았다’ 이렇게 간단 말임. 하나의 결과를 간증(X무한반복) 하며, 기도하고 모여서 부흥회 하고, 이런 과정들을 한 방에 치유(?)시켜 버림. 그 과정 때문에 그 결과가 일어났다고 해버린다는 말임. 이게, 이런 사고 방식이 합리적인 현대인의 사고가 되질 못하고, 그저 미신에 머무르게 되는 이유임.
그런 유형의 결과론적 사고는, 똑같이 결과론적 사고에 의해 배척되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미국의 선도 기업 애플의 CEO 팀쿡은, 그 종교 집단에서 ‘신이 벌을 내린다’고 선동하는 게이라는 사실임. 그럼 결과를 보면 자기들보다 수만배 더 복을 받았는데, 이 부분에서는 결과주의에서 의미 중심적 태도로 싹 도망쳐서, 타격을 피함. 즉, ‘그런 데이터는 내게 의미 있는 데이터가 아니다’ 하고 멀리한다는 말임.
근데 그렇다고 해서, 의미 측면으로 깊어져서 ‘진짜로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거나 하지는 않음. 그냥 계속해서 그런 ‘철저함’과의 대면을 회피하며, ‘동네 부자들 다 기독교인이더라’ << 이 정도 얘기를 하는 레벨에 머무름.
근데 예를 들어, dna에 자손을 낳는 것이 들어 있다고 해서, 자손을 낳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도 너무 명확한 근거들이 존재함. 대단한 논리학적 근거 말고, 그냥 일상 주변의 근거 말임.
왜냐면 대머리 되는 것도 dna에 들어 있고, 늙어 죽는 것도 dna에 들어 있고, 암이나 당뇨 같은 가족력도 모두 dna에 들어 있는데, 그런 것들은 다들 ‘피하려’ 하지, ‘인생 목적’이라고 하지 않는단 말임. 그러니 ‘설계된 바’가 절대로 ‘인생 목적’과 동치가 될 수가 없음.
이런 애매모호한 결과론적 사고들은, 존재론적 사고와도 매우 결부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과거 학벌이 되게 중요한 평가 지표, 지금보다도 더 많은 것을 평가하게 하는, 즉, 명문대 나온 사람은 성격도 곱고 도덕적일 것이다 하는 식의, 너무 많은 평가의 평가 지표로 삼는, 그런 것이 있었음.
왜? 그 대학 출신이라는, 그 학벌 그 자체가, 너무 명확하게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 졸업장이, 애매모호하게 해석해야 할 것이 아니라, “서울대 출신”하고 딱 떨어지게 존재하니까. 이게 인지 부담을 굉장히 줄여 주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인지 부담을 낮춰 주는 정보들을, 각 개체는 생물학적 차원에서 마치 ‘배려 받듯’ 느끼며, 자신이라는 생물에게, 이익되는 수긍으로 여기기 때문임.
왜냐면, ‘저 사람 뭐 하는 사람이야?’하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해야 하면, 그 사람의 ‘모호한 정체’라는 것 자체가, 한 생물의 생존에 있어서, 짜증나고 열받는 일이란 말이지. 근데 ‘서울대 출신이야’ 하면, 그런 해석 부담, 인지 부하를 들여 자원 소비를 해야 할 일을, 대폭 감소시켜 버린단 말이지(과거에. 혹은 지금도 누구에겐).
그 인지부담 감소가, 소위 ‘낭만과 야만의 시대’에는(스트레스와 아드레날린이 가득했던 시대에는), 되게 각 개체들에게, 그 개체가 생물이라는 차원에서 봤을 때는, 그런 인지 부담 감소가, 아주 나이스한 작용이었음.
이게 물질주의와 결합된 사이비적인 존재론적 사고가 사회에 팽배하게 되는 원인임. 형용사나 부사, 술어까지 다 떼어 놓고, ‘명사’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꽉 채워져 버리니까. 이 시절에 유행하는 단어들도 대체로 그러함. ‘골목 대장’ 이런 단어 생각해 보셈. ‘오른팔’ 이런 단어들.
지금, 요즘의 단어를 봐보셈. CTO, CFO, COO, CIO, CSO, C 머시기 총괄 머시기 저시기. 뭔지도 모르겠어. 아주 복잡한 거지. 하나하나의 ‘의미’가 중요해진 거야. 그냥 단순히 C레벨이다,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지. 근데 결국에는 C레벨이라는 점이 중요하기는 한 거니까, 굉장히 존재론적이지.
의미 중심적 사고로 생각해 보면, 타이틀이나 학벌 그런 거 없이도, 자식 먹이는 데 문제 없고, 나 하나 건사 할 수 있으며, 건실하게 일 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거든. 근데 존재론적 사고에 비해, 어렵고, 딱 봐도 파괴력이 약해 보이지. “우리 아빠 삼성 부장이다” 이게 더 쎄다는 거야. 쉽고. 그냥 마패처럼 명사 하나 딱 꺼내는 게.
근데 불교는 당연히, 익히 알듯이, 의미 중심적 사고가 강렬한 종교지.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으면 붙들지 말고 내려 놓아라. 왜 행복하지도 않은데 붙들고서 고통스럽다고 하는가?
존재론적 사고가 가득한 에고에, 이런 울림을 계속 가하는 게 불교란 말이지. 근데 사실, 고통을 이겨내며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그 영역에서 고통 없이 해내는 ‘타고난 사람’을 따라갈 수가 없거든. 애초에 다른 길로 갔어야 되는 거야. 꼭 맞고 행복한 길로. 그래야 그걸 잘 해서 남들보다 앞서지.
쓰다 보니까 멀리 왔는데, 왜냐면 내가 느낀 거를, 나 아닌 사람도 느낄려면 이 정도 설명은 했어야 했어서.
내가 관심있는 포인트는
불교는 물질주의와 존재론 그리고 정신주의와 인식론 사이에서,
“물질도 마음이다” 이렇게, 어떤 대상이 있다면, 의미로 해석되지 않은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보고, 이미 대상이 된 것은 이미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 대상이라고 풀어가면서,
물질을 정신 안으로 끌어 안으면서, 그걸 통해 물질에 대한 도외시를 타파하려 했다고 생각이 들음.
불교가 물질과 괴리되어서, 무슨 현자의 돌 찾고 그런 어수룩한 종교는 아니거든.
+ 반면 존재론적 사고를 선호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는 그저 하나의 ‘은유’여선 안돼. 그건 하나의 실제적인 사실이어야만 하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성경도 모두 하나의 비유여선 안 되고, 모두 사실이어야 하는 거야. 여기서 기독교는 많이 망가진다. 이 사람들은 “우리 아빠 삼성 부장이야” 이게 필요한, 종교적으로는 굉장히 측은한 사람들이야 그냥. 그런 데 머물러서는 깊어질 수가 없다. 머리수는 아스팔트 유튜브 마냥 쉽게 늘릴 수 있겠지. 하지만 그래서는 ‘만인제사장 이론'(사제가 필요 없다, 모두가 신성한 자녀) 같은 이상은 전혀 실현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