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담마파다, 법구경 day 1 (1)

어느날 내 맘에 쏙 들어온 불교, 매일의 담마파다, 이건 첫번째 레슨, 오늘부터 1일 – 법구경 Day 1

법구경 담마파다 게송1 (Dph 1)

모든 법은 마음이 앞서고, 마음이 으뜸이며,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만약 오염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그로 인해 괴로움이 마치 수레바퀴가 수레 끄는 소의 발걸음을 따르듯이 그를 따른다.

법구경 담마파다 게송2 (Dph 2)

모든 법은 마음이 앞서고, 마음이 으뜸이며,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만약 청정한 마음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면, 그로 인해 즐거움이 마치 떠나지 않는 그림자처럼 그를 따른다.

오염된 마음과 청정한 마음

불교에서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 이 3가지를 삼독심이라 부르며 경계합니다. 줄여서 탐진치 3독심이라 부릅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그런 마음을 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겠죠.

그런데 탐욕과 성냄은 스스로 절제하고 조절 가능하다 생각되니 이해가 갑니다만, 어리석음은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대체 어떻게 조절하라는 건가?’ 하고 어색하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조절해 똑똑해질 수가 있다면, 다들 똑똑해져서 서울대 갔겠죠. 그런데 그렇지가 않잖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어리석음’은 ‘무분별함’입니다. 잠시만 생각해보면 스스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들을, 조금의 생각도 없이, 말 그대로 ‘생각 없이’ 말 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리를 가려야 할 때에,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를 분별하지 않고 행동한다거나, 어른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거나 하는 등을 말합니다.

이러한 어리석음은 탐욕과 성냄만큼이나 어느 정도 절제와 조절이 가능한 일이겠죠. 그래서 불교에서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 이 3가지를 탐진치 삼독심이라 부릅니다. 말 그대로 마음에 첨가되는 3가지 독이라는 거죠.

게송1과 게송2에 등장하는 ‘오염된 마음’과 ‘청정한 마음’은 바로 이러한 탐진지 삼독심에 ‘물든 마음’과 ‘물들지 않은 마음’을 의미합니다. 물들면 오염된 마음이고, 물들지 않으면 청정한 마음인 것이죠.

그러나 이런 얘기들은 지나치게 교과서적이고 이론적인 얘기일 뿐이니, 아주 조금만 더, 일상적인 얘기로 들어가 보도록 합시다.

오염된 마음

오염된 마음은 ‘헝클어진 마음’을 의미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밤에 잠이 늦게 들어서 잠을 충분히 푹 자지 못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침에 일어났고, 출근해야 하고. 몸도 피곤한데 얼마나 바쁘고 짜증이 나겠습니까.

하지만 그러한 피곤과 짜증은 내 사정일 뿐인 거겠죠. 그때의 피곤과 짜증으로 헝클어진 마음대로, 그대로 회사에 가서 동료들과 상사들을 대한다면, 그야말로 사회 생활은 그날로 끝나는 일이 되겠죠. 마치 컴퓨터 종료 버튼을 누르듯, 종료되는 일일 것입니다. ‘띵동동동’ (컴퓨터 종료음) 하고 말입니다.

바로 그런 얘기입니다. 스스로의 마음이 헝클어져 있을 때, 그 순간에 ‘아 이것은 헝클어진 마음이다’ 하고 알아차리는 것부터가 깊은 수행으로 들어가는 시작입니다. 그 마음대로, 알아차림 없이 행동해버리면, 세상에 온갖 문젯거리가 내게 밀려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세상 모든 문제가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너 잘만났다’ 하고 나를 반기고, 나의 문제로 되어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알아차림’을 중시합니다. ‘이 마음은 헝클어진 마음이다’하고 알아차린다면, 최소한 알아차림 없이 그대로 무분별하게 행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때로는 여력이 안 되어 훌륭하게 행동하지 못 할 때도 있겠지만, 반복하고 훈련할수록 숙달이 되어 더 능숙해질 것입니다.

청정한 마음

청정한 마음은 바로 ‘그렇게 숙달이 되어가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린 마음의 자리를 떠나서 행동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헝클어진 마음자리를 떠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마음만 먹으면 즉시에 벗어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잘 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많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자기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 됩니다.

나는 아침에 음악을 들으면 헝클어진 마음이 정돈된다 하시면, 음악을 듣는 시간을 갖는 것이 방편이 됩니다. 누구는 커피 한 잔이면 즐거움이 금새 찾아올 수도 있겠지요. 매일 매일이 다 완벽하진 않지만, 잘 찾아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좋아하는 것, 작은 행복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것들을 내 주변에 잘 배치하고, 잘 응용해서, 헝클어진 마음에서 벗어나, 늘 깔끔하게 잘 정돈된 마음으로 행동하고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 불교의 깊은 수행은 모두 여기에서 시작하고, 또한 여기로 되돌아옵니다.

팔정도

이러한 일에 숙달되어 가고, 이러한 방식을 끊임없이 삶에 적용하고, 오염된 마음을 떠나 청정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되돌아가는 수행을 ‘팔정도 수행’이라고 부릅니다. 특히나 여기서는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다루니, 이것은 팔정도 중에 정어(正語, 바르게 말하기)와 정업(正業, 바르게 행동하기)에 해당합니다.

이 세상은 고해의 바다입니다. 고통이 헤일같이 밀어닥치고 있는 것이 우리 사는 현실 세계인 것입니다. 생물학적 진리에 의해서도 보증되는 일입니다. 모든 생물은 ‘살아남기’위해 투쟁하고 있고, 그 말은 달리 말하면 ‘항시 만연된 고강도 스트레스의 숙업’을 기본적으로 깔고, 그 위에 우리 세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곳에서는 당연히 헝클어진 마음으로 행동하고 말하며, 상처주고, 짜증을 부리며,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행동을 하며 살아가기가 쉽겠죠. 서로 빼앗으려 하고, 다퉈서 쟁취하려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청정한 마음, 맑은 마음, 잘 정돈된 깔끔한 마음으로 늘상 말하거나 행동하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점이 금방 구분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세상의 모든 문제로부터 떠나, 모든 복을 마치 우리 몸에 붙은 그림자처럼 따라붙게 만드는 방편이 됩니다.

마음 곱게 쓰고, 남들에게 헝클어진 마음을 끼얹지 않는 것부터가, 큰 공덕을 짓는 일이 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공덕 짓는 일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도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됩니다.

불교는 심지어 사회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출가한 사람들이 수행하던 종교였습니다. 그럼에도 공경 받고 스승이 되고 하였던 것은, 그들이 모두 ‘마음 곱게 쓰는 청정한 힘’의 달인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행동과 말씨에 금방 남들과 다름이 구분되고, 처음 생긴 종교이니, 누가 가르치고 알려줘서가 아니라, 각자 직접 경험하고 느껴서 그 새로운 종교인 ‘불교’ 수행자들을 예경했습니다.

그때의 생생한 원리가 법구경 담마파다, 이 안에 들어 있습니다. 함께 탐구해 나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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