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만보신 노사나불

<원만보신 노사나불>

우리 우주는 일정한 틀과 패턴을 갖고 있는데, 그 틀과 패턴에서 벗어나는 아주 작은 예외값이라도, 그니까 내가 이례적으로 한 선행 하나 조차도, 그것이 전체로서의 우주 일부를 변화시켰다는 사실 하나는,

즉 기존의 패턴 조합이. 전혀 다른 패턴 조합으로, 고작 단 한 번 발휘된 것 조차도,

이 우주에는, 그것이, 그 단 한 번의 패턴 변화조차도,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정보 자체가, 이 우주에, 우리가 죽은 뒤로도 영원히 남겨진다.

그니까 이게,

불교가 ‘무아’ 라고 하면서도, 결국에는 그 무아를 근원으로 해서, ‘자비의 패턴’을 ‘무수히 발현시키려’ 하려하려하는 ‘의도’를 가진 이유임.

그 자비의 패턴은 이 우주에 영원히 남아, 계속해서 새로운 인과를 내고, 계속해서 우주를 변화시킨다. 설령 인간이 다 멸종하더라도, 우주에 ‘그러한 타격’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영구적으로 반영되어, 계속 그 인과를 일으킨다.

나의 선택으로 ‘어느 한 부분의 배치가 변경되었다’는 사실이, 그 사실이 발생한 이후로, 항구적으로 남는 사항이 된다는 말임.

기존 틀과 패턴이 계속 ‘반복’되는 것은,

말하자면, ai에게 어떤 한 질문을 하고서, 답변이 나오면, 그 답변 밑에 ‘재생성’ 버튼을 계속 누르는 일임.

그런데 그 기존 틀과 패턴을 ‘변경’하는 것은,

말하자면, 답변 밑의 ‘재생성’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여러 생성값들을 통해 좋은 결과나 안 좋은 결과 등을 반영해서, 그 위의 ‘질문 자체’를 편집 버튼 눌러서 변경하는 일임.

위로 올라가 질문 자체를 변경하면, 아예 다른 생성값이 나오니까, 이게 완전히 다른 패턴으로의 ‘패턴 변화’를 의미함. (그리고 그건 마치, 일종의 ‘종분화’와도 같지. 공통조상이라는 단일 패턴에서, 침팬지라는 패턴과 인간이라는 패턴으로, 각각 모두 전에 없던 패턴으로, 갈라지는 것처럼, 그리고 그 뒤로는 인간이라는 일종의 동일 패턴 안에서, 무수한 재생성이 일어나는 것처럼.)

그러면 어떤 존재가, 모두가 유아론적인 관념을 가진 세계관에서, 스스로 무아의 관점을 택하고, 자비의 패턴 발현을 일으킨다면,

그 자체가 영구적으로 기록되는 패턴 변화임. (타임라인에 멀티-유니버스가 갈라지는 하나의 ‘분기’가 형성되고, ‘종분화’가 일어나듯.)

그리고 그런 ‘패턴 변화’는 그 존재가 죽고 난 뒤에도 항구적인 의미를 지님. 즉, 우주는 그 정보를 포함시켜서, 계속 그 ‘새로운 질문’ 하에서의 생성값만 발현됨. 이미 반영된 그 변화가, 되물러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음. 모든 것이 멸종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대도, 우주에 대한, ‘그 사실의 반영’은, 영원함.

말하자면 ‘그러한 이 우주 전체’가 곧, 무아임에도 수행의 보상으로서 받는 몸, <원만보신 노사나불>이라 볼 수도 있다는 거지.


짧은 버전>

우주는 반복되는 규칙과 경향을 가진다. 그러나 어떤 의도적 행위든 세계의 상태를 실제로 바꾼다. 한 번 발생한 변화는 취소되지 않고, 이후의 조건망 속에 흔적으로 남아 다음 인과를 특정한 방향으로 편향시킨다.
무아는 영구한 주체를 부정할 뿐, 의도와 인과의 연쇄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아를 바탕으로 자비의 행위를 선택하는 것은 ‘나를 영원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조건망 자체를 더 밝은 방향으로 조정하는 실천이 된다. 그 실천의 흔적은 내가 죽은 뒤에도 관계와 세계의 조건 속에서 계속 작동한다. 이를 법계가 공덕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본다면, 나는 이 전체를 ‘원만보신 노사나불’에 비겨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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