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어느 순간부터, 종교 같은 걸 권하지를 않는데,
물론 이제 나는 아주 좋아하고, 그냥 나 스스로 탐구하는 것은 거의 무제한적으로 내 자신에게 허용하지만,
그 정도로 좋아하지만,
그걸 굳이 남에게 권유하지는 않는데, 즉 강요는 커녕 어느 순간부터는 권유도 거의 사실상 안 한다는 말임, 그냥 나 좋아서 탐구한 내용을 글로 쓰거나, 그냥 이런 저런 얘기, 친구 만났을 때도 종종 하긴 하지만,
이거 하려면 저거 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혹은 이걸 해보면 좋다, 이런 식으로, 그런 권유는 안 하게 됐단 말임.
왜냐면
어느날 내가 이제 나이도 먹고, 옛날식으로는 이미 중년이니까, 나도 (아 물론 젊다 하면 젊지만), 어느날 내가 ‘세월이 참 한정되어 있다’ 라는 걸 느꼈단 말이지.
그니까, 우리가 전부 다, 째깍째깍 초시계가 돌아가고 있는, 시한부 인생이라는 걸 깨달았단 말임.
그럼 그런 초시계 돌아가고 있는 시한부 환자들에게,
그 인생의 시간을, 내 좋아하는 것을 소비하는 데에 써라, 이런 권유를 도저히 할 수가 없겠더라는 거임.
예를 들어 이승만에 대해 알아야 한다, 김구에 대해 알아야 한다, 아니면 뭐 독립운동사를 자세히 알아야 한국인이다, 이런 주장들에 대해서도 나는 마찬가지로 느낀다는 거임. 전두환이니 기타 등등도 다 마찬가지고.
가령, “네 그 째깍째깍 시한부 인생을 ‘전두환’이라는 정보를 자세히 소비하는 데 써라” 이런 문장은, 이 세상에 아무런 당위가 없다고 나는 느낀다는 거임. 그런 건 다 그냥 중고등학교 때에 국사든 역사든 교과서에서 스치듯 배우는 정도로 다 충분하고.
내가 내 제일 좋아하는 것도 권하길 꺼릴 정도인데, 그런 걸 권하는 게 마음이 가겠냐고 내가.
그 사람의 ‘한정된 인생’이라는 자원, 그 안에서의 아주 지극히 ‘한정된 자유’를, <내가 지시하는 무언가>를 위해 쓰라고 한다는 게, ‘내가 뭔데 시발?’ 하고, 개뿔 말이 안 된다고 느낀다는 거야. 뭐, 저 좋아서 하는 일들은, 당연히 거기에 내가 뭐라 할 일도 아니고. 그건 당연한 거고.
어떤 사람들이, 그냥 일반적인 내 친구같은 사람들이, 불교 이론 같은 거 좀 잘 모른다고 해서, ‘너는 왜 그런 것도 몰라?’ 이렇게 전혀 생각할 수가 없는 거지. 그 사람의 한정된 인생, 그 한정된 자유를, 자기 좋을 대로 써야지 왜 나 좋을 대로 써야 하겠어? 내 기준에 왜 맞춰야 돼 그 사람이. 나는 내가 좋아서 알게 된 것일뿐인데. 내가 좋아서 알게된 것의 책임을 남에게 묻는 듯한 태도가 되어 버리잖아.
이런 것은 불교적으로 보더라도 ‘수처작주'(어디에 가든 스스로가 손님이 아니라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라)를 못 하는 거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의 생각, 남의 기준이 중요한, 남의 자신이 되니까. 나는 내 만족으로 끝나는 거고, 남에게는 내 만족을 밀어 넣을 필요 없지. 지저분하지 그렇게 하면. 내가 내 스스로의 행동에 나 스스로 만족을 하고, 나머지는 다 자비심으로, 온 존재가 부처인 양 대하라고 하잖아. 물론 나는 맨날 화 내지만. 그릇이 모자라서 그래 나는.
결국에는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엄청나게 자각을 해야 해. 왜냐면 그건 사실이니까. 우리가 남에게, 마치 대학 교수가, 학생이 자기 수업만 듣는 것처럼 과제를 왕창 내주는 것처럼, 그렇게 남에게 ‘과제 왕창 내주는 사람’이 되어선 안된다고. 그거 자체가 이미 자비심을 잃은 태도인 거지. 그 사람을 도와 편케 해줘도 모자랄 판에, 내가 그 삶에 또 새로운 퀘스트를 세워버리면 되겠냐고.
그니까 이렇게 들어가고 나면, 결국에는 ‘가타부타’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그냥 자기 자리에 잘 머물러서, 이게 결국에는, 내가 더더욱 파김치마냥 완전히 칠렐레 팔렐레 다 놓고, 풀어 헤치고 깊어져서, 그냥 아삭아삭 맛이 절절~ 하게 우러나와서, 특별한 방편을 빌리지 않고서도 사람을 내가 삼매 중에 들어가 있는 상태로까지, 소매라도 잡아 채서, ‘엇?’하는 사이에 밀어 넣는 지경까지, 가버리는 결론밖에는 남지가 않음.
그냥 내가 내 우물 파는 것으로, 아예 상대를 편케 하고, 아예 책임질 수 있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는 말임. 내가 뭐 이래라 저래라 해서, 상대가 뭐 특별히 이러거니 저러거니 할 필요가 없이.
그러니까 결국에는, 그 사람 한정된 인생을 써야 하는데,
내가 여기에 쓴 시간만큼, 그 사람이 그 사람 인생을 쓰려면,
그건 그 사람에게 득 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인생을 망가트리는 거란 말이지.
그러니까 그렇게 가선 안돼. 그러니까 권유할 수가 없지. 알면 알 수록 더 더 시간을 잡아먹힐텐데, 그 사람 인생이 대체 뭐가 되냐고. 역사 같은 것도 마찬가지임. 하나 알고 나면 계속 계속 더 시간을 써야 되는데, 어디까지 써야 얼마나 알지, 누가 장담을 하냐고?
종교 수행 권유도 마찬가지고. 한도 끝도 기약도 없는 그것에, 인생을 쓰라고 누가 말할 수 있냐고? 그 사람이 거기에 시간 다 쓰면, 네가 그 사람 인생 책임 질 수 있어?
뭐 옛날에는 스님들이 한 사람 인생 정도는 책임질 수 있었겠지. 파계 안하고 잘 살면, 어디 일이라도, 마당이라도 쓸라고 하고 밥 먹이면 되니까. 근데 나는 그 사람 인생 책임 못 진단 말이지. 근데 나 좋아하는 일에 그 사람 인생 쓰라고 하면 안 되지.
물론 무슨 영화 재밌었다 이런 건 당연 추천하고 할 수 있지만, 불교 뭐 역사 뭐 이런 건 파면 팔 수록 인생을 갉아먹히는 일인데, 그런 걸 감히 남에게 함부로 권할 수가 있겠냐고. 책임도 못 지면서.
그러니까 권유는 안 하게 되는 거임. 그 사람 인생은 그 사람이 더 잘 알고, 그 사람의 판단이 더 우선이니까, 그걸 굳이 가타부타 않는 것이 맞다고 보고.
아니, 내 친구가 내가 만든 사이트에 올린 글 보고서 기겁을 하더라고.
야 너 거기 한자 같은 거 써 놓은 거 보고 깜짝 놀랬다 하고.
그걸 네가 일단은 다 읽고 이해하고 검토하고 쓴 걸 거 아냐? 하면서.
내가 사이트 만든다니까 그런가보다 하다가 내용 보고서는 ‘어? 뭐지?’하고 기겁을 하더라고. 걔도 뭐 공부 할 만큼 한 애거든. 중고등학교 때 한문 교육 다 받았고. 근데 그래도 자기는 불교에 대해서 그냥 석가모니, 우리 다 부처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 이 정도 아는데 깜짝 놀랬다고 말한단 말이지.
긍까, 그냥 일상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일반적인 대중의 지식은, 고 정도 선에서 왔다갔다 한단 말이지. 그게 평범하고, 특별히 모난 것 없는 정상적인 일임. 거기에서 그 사람의 삶을 존중하고 그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을 존중하는 이상은, 내가 아는 걸 굳이 그 사람이 알아야 하며, 그 사람 인생의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갈 수가 없음. 그 사람의 삶 자체가 온전한 부처의 삶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는 나대로 내 불도를 닦는 것 외에는 없는 거지.
이게 사실상 외통수야.
나를 알고 너를 알고, ‘자비심’이라는 말을 들어보고, ‘중생이라는 것은 없다, 모두가 부처다’라는 말을 들어봤다면, 내가 내 우물 파서, 엄청난 법력을 내서 자연 감화되는 것 외에, 여기에 다른 길이 없다.
이러고 보면 청화나 성철이나 그런 절절-한 노인네들이, 왜 그렇게 파김치마냥 폭 절여져서 그러고 살아 갔는지, 하 시-발 미친놈들. ‘이런 걸 하고 살았어?’
기분이 나쁘다. 난 기분이 나빠. 언제든 ‘제잘난체’나 하고 싶은 게 그릇 작은 나의 속셈(속 헤아림)인데, 저~ 멀리 아~주 까마득한 연장선 밖에서, ‘되겠냐?’ 혹은 ‘이제 알았냐?’ 하고 손짓하고 있는 노인네들이 있어서, 그냥 나는 기분이 나빠. 쉬~발! 잘난체도 못 하고!, 영 재미도 없고! 쓰레기 같애. 이 세상은 쓰레기다! 아하 아하하하!
여기까지 오는 데는 참 재밌었는데, 알고 보니 이게 참 재미가 없는 거였어. 재미가 하나토 없다 재미가 하낳토 없어!
이 쓰레기 같은 세상. 내 통장에 2000억도 없고! 재미도 없어!
아주 재미 없어!
물론 이제, 이미 어떤 인생 곡선이 틀어져서, 그걸 감당하기 위해 일정한 종교적 행위들이 필요하다면, 거기에는 좀 추천할 수도 있겠지만(심지어 거기서도 병원 가보고 멀쩡한(?) 방법을 우선적으로 다 권하고, 그 다음에도 이게 궁금하면, 그때야 추천하는 거고), 근데 그건 이미 여기에 연이 닿은 사람인 거고. 연이 없는데 굳이 추천은 않는다 이 말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