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성 없음과 아나아트만

나같은 이상한 사람도 스타일로서는 원본성을 주장할 수가 없는 게, 다 어디서 따온 스타일들이기 때문이다. 선수행을 배운 것은 나 화두 주신 주지스님에게서 온 것이며염불하고 여러 종교들을 두루 회통하는 것은 청화스님에게서그리고 선어록들을 곁눈질하며 ‘막말하는 가풍’을 <독학>했다. 물론 막말에 선종의 종체가 있는 것은 아닌데 내가 적당히 그 외양만 베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론한 사람들을 ‘이었다’고 할 수도 … 더 읽기

역사적 공론주의자에 대한 결별 선언

[서문: 역사적 공론주의자에 대한 결별 선언과 보살의 도] 나는 진짜 모르겠다. 나는 역사적 공론주의자들을 앞으로의 지표로는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 고작 그 정도의 방편도 두루 쓰지 못하는 것은, 보살로서 전혀 좋은 솜씨가 아니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관법과 말로 쓰여진 삼매는 다 한 번씩 닦아봐야 그나마 쓸만한 놈이 될 것이다. 아무리 봐도 문자에 집착하는 놈들은 그냥 관법이 약하다. … 더 읽기

<설일체유부를 위한 변론: ‘존재한다’는 말은 아무런 죄가 없다>

<설일체유부를 위한 변론: ‘존재한다’는 말은 아무런 죄가 없다> 결국 반야부는, 불교에 속한 오온론 등 존재론적인 모든 부분들이, 결국엔 모두 ‘명색’에 속한다고 선언함으로써, 모든 존재론을 인식론으로 환원시킨 것에 불과하다. – 반야부가 존재론을 인식론으로 환원시켰다는 말은 이런 것이다. –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하는 순간, ‘일체는 곧 12처다’라고 설한 부처의 말과 배치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분명 부처는 일체는 12처고, 12처가 무상하니, … 더 읽기

<여래장은 계속해서 해탈하게 하는 근원적 동력>

<여래장은 계속해서 해탈하게 하는 근원적 동력>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이 말처럼 자성청정심의 원리를 잘 설명하는 명문이 없다. 개혁교회는 <개혁교회>라고 도그마적으로 고착화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롭게 개혁되고 있는’ 하나의 ‘상태’라는 것이다. 자성청정심과 여래장을 아트만론으로 몰아세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선종이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자신의 의도를 따라 의도적으로 자꾸만 망각하려 노력하는 듯 보여진다. 나는 이런 … 더 읽기

<삼매는 닭 부리로 쪼는 것>

<삼매는 닭 부리로 쪼는 것> ‘삼매’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삼매라는 것의 사전적 적의 외에, 그것의 작용, 즉 기능론에 대해 고찰하는 것으로도 답변될 수 있을 것임. 즉, 삼매로 ‘뭘 할 거냐’ 하는. 먼저, 삼매는 쉽게 말해, 한 가지에 집중하는 힘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훈련임. 아주 오래도록 한 가지에 대한 집중과 생각을 유지하면서, 우리 의식으로 하여금, ‘이것을 해석하는 데에’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