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祖 僧璨 禪師 – 信心銘 #
삼조 승찬 선사 – 신심명 #
승찬선사 신심명: 제1구~제4구 #
至道無難 唯嫌揀擇
지도무난 유혐간택지극한 도는 어렵지가 않나니, 다만 ‘이것일까, 저것일까’하며 고르고 분별하는 마음을 사무쳐 멀리하면 될 뿐이다.
▶ 지도무난(至道無難) 하여 유혐간택(唯嫌揀擇) 하니
但莫憎愛 洞然明白
단막증애 통연명백그저 ‘미워함과 사랑함’만 짓지 않으면, 막힘 없이 탁 트여, (도문(道門)에 이르는 길이) 저절로 환히 밝아지는 것이다.
▶ 단막증애 (但莫憎愛) 커면 [본디] 통연명백(洞然明白) 이니라.
– 사실 신신명의 모든 요결은 여기에서 끝났다. 이 이후는 근기가 모자란 이들을 위해 승찬 선사가 제공하는 ‘절차탁마 서비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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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이 구절들은 신심명의 가장 핵심적인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깨달음이나 진리는 본래 어렵거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이 끊임없이 ‘이것은 좋고, 저것은 싫다’라고 분별(揀擇)하고 ‘좋아하고 미워하기'(憎愛) 때문에, 본래부터 환히 밝은 진리를, 이미 명백한 진리를, 두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말입니다.
선가(禪家)에서는 모든 고통이 이 분별심(分別心)에서 시작된다고 말을 합니다. 나와 너를 가르고, 내꺼다 네꺼다를 가르며, 미움과 사랑함을 짓고, 고통과 분노를 이루게 하여, 이것이 생사유전과 끝없는 윤회를 낳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는 ‘분별시비를 일으킨다’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선불교에서는 그것들을 극복한 ‘무분별의 지혜’를 말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마하반야바라밀’입니다. - 번역 원칙: 해밀문의 번역에서는, 기존에 존재하는 간명하고 함축적인 번역들과 달리, 가장 상세하고 세밀한 번역을 지향합니다. 중생의 인연이 각기 달라, 다양한 인연의 문을 여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입니다.
1~4구 쉬운 명상 #
승찬선사 신심명: 제5구~제8구 #
毫釐有差 天地懸隔
호리유차 천지현격털끝만큼이라도 ‘이거다’ ‘저거다’ 가르고 나누는 차별심(差)이 있게 되면, (도문과 네 사이가) 하늘과 땅처럼 벌어지게 되니,
▶ 호리유차(毫釐有差) 면 천지현격(天地懸隔) 하니
欲得現前 莫存順逆
욕득현전 막존순역진리의 경계가 눈 앞에 펼쳐지길 바란다면, 어느 것이든 거기에 ‘따르거나 거스르는 마음을’ 두지 말라.
▶ 욕득현전(欲得現前) 이어든 막존순역(莫存順逆)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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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분별하는 마음이 아주 조금이라도 생기는 순간, 진리와의 거리는 하늘과 땅처럼 멀어집니다. 내 마음에 맞는 것(順)과 맞지 않는 것(逆)을 구분하고 한쪽을 취하려는 마음을 버려야만, 비로소 전체로서의 진리가 눈앞에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말합니다. 뜻으로 번역하면 ‘무상정등각‘이라고 흔히들 말을 합니다. 무상이라는 말은 위가 없다, 최고 등급이라는 말이며, 정등하다는 것은 고르고 균질적이라는 말이 됩니다. 달리 말하면 최고 등급의 평평한 지각, 그래서 두루 원만한 지각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평평함‘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상정등각은 달리 말하자면 ‘완전한 평평함‘입니다. 완전히 균질적이어서, 어느 한 군데도 모남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은 ‘우주 전체를 몸으로 한다’고 흔히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란 곧, 완전히 균질적이고 평평하게, 모남이 없이, 우주 전체에 원만히 두루하다는 의미에서 입니다. 신심명은 시작에서부터 ‘그러한 자리’에 도달하는 요령을, 직접적으로 설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선가의 가풍(家風)입니다. 오로지 진리에 대해 곧장 직접적으로 다루려고 시도하는 것 말입니다.
5~8구 쉬운 명상 #
승찬선사 신심명: 제9구~제12구 #
違順相爭 是爲心病
위순상쟁 시위심병수행자가 처음 수행을 할 때에 시종 거스름과 순종이 서로 다투고 있는 것을 관찰하게 되니, 바로 이것이 ‘마음의 병통’이라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 위순상쟁(違順相爭) 이 시위심병(是爲心病) 이니
不識玄旨 徒勞念靜
불식현지 도로염정그러니 맨 처음 말한 것과 같은 실질적인 수행의 요결을(玄旨) 전혀 알지 못하면, ‘고요해져라’ 되뇌이며, 공연히 마음만 더욱 괴롭게 만들 뿐인 것이다.
▶ 불식현지(不識玄旨) 하면 도로염정(徒勞念靜)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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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마음속에서 ‘좋다/싫다’가 끊임없이 싸우는 것이 모든 고통의 근원인 ‘마음의 병’입니다. 이 근본적인 원인은 보지 못하고, 억지로 생각을 없애고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려고만 하는 것은 헛된 노력일 뿐임을 지적합니다.
초학자가 수행을 하려 할 때에, 오히려 마음이 더 치성하게 일어나며, 마음속에서 ‘좋다/싫다’가 더욱 전쟁같이 격돌하기 시작합니다. 사실은 원래부터 거기에 있던 것인데, 마음을 차분히 하고, 관찰을 하려 하니, 원래 있던 그것들이 더 부각되어 보이는 것입니다. 마음의 돋보기를 가져다 대면 무엇이든 크게 보이겠죠.
그리고 바로 그때에, 그것을 목격하는 때에, 초학자는 바로 그 싸움이 모든 고통의 근원이며 그것이 바로 직접적인 ‘중생의 미혹한 마음’임을 깨달아 알라는 말입니다. 수행자가 수행하는 중에, 일평생을 상대해 나가야 할 대적자가 바로 ‘그것’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게 중생의 근본무명 즉 ‘마음의 병통’인 것입니다.
이 근본적인 원인을, 지금 있는 그대로, 바로 곧장 직접적으로 상대하려 하지 않고, 억지로 또 생각을 지어, 거기에 ‘생각을 없애려는 마음’을 더하고, ‘고요하게 하려는 마음’을 더하면, 이것이 오히려 또 다른 집착이라, 그러한 생각과 마음들이, 오히려 이제껏 ‘그것’에 땔감을 넣어 더 활활 타게 해오던 일임을 학인은 자각해야 합니다. 그러한 것은 공연한 일이며 헛된 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9~12구 쉬운 명상 #
승찬선사 신심명: 제13구~제16구 #
圓同太虛 無欠無餘
원동태허 무결무여중생의 본래 마음이, 본디 부처와 같아, 두루 원만하기가 텅 빈 허공과 같은 것이요, 모자람도 없는 것이며, 남음도 없는 것이나,
▶ 원동태허(圓同太虛) 하고 무결무여(無欠無餘) 하나
良由取捨 所以不如
양유취사 소이불여진실로 다만 중생이, 취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는 까닭에, 그로 인해 어긋나, 그와 같지 못하게 될 뿐인 것이다.
▶ 양유취사(良由取捨) 한 고로 소이불여(所以不如) 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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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우리의 본성, 즉 참마음은 본래부터 완벽해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무언가를 얻으려 하고(取) 무언가를 버리려 하기(捨) 때문에 이 완전한 본성과 항시 일치되어 있지를 못하고, 매 순간 차별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달리 역순으로 말하면, 취하기도 버리기도 하기 때문에, 남음도 모자름도 있고, 그리하여 두루 원만하지 못하며, 두루 원만하지 못하기에, 도리어 허공과 같이 텅 비어 있지도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와 반대로 취함과 버림을 떠나면, 사랑함과 미워함을 버리면, 그러한 ‘고르고 선택하는 마음’을 사무쳐 떠나면, 당연 원만한 허공 같은 마음에 계합해 ‘툭 트여 환히 밝아'(통연명백 해)지겠지요.
불교에서는 지혜가 두루 원만하면, 곧 모든 곳에서 무아를 성취하고, 언제나 해탈의 마음에 머무른다고 설시를 합니다. 모든 곳에서 무아를 성취해 버리면, 말 그대로 ‘해탈의 마음’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게 되겠지요.
그래서 이처럼 두루 지혜가 원만한 사람들을 초기 불교에서는 ‘아라한’이라고 불렀습니다. 번역하면 ‘응당 공양 받을 만한 분’라는 뜻인데, 아라한은 곧 ‘무학(無學)’과 통용되어 쓰였습니다. 더 배울 것이 없는 사람들, 혹은 한문 용어에서는 ‘무(無)’라는 것을 ‘통달한(學)’ 사람들이라는 의미도 아주 은유적으로 내세웠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