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 (雜阿含經, Saṃyukta-āgama, Goryeo no.650, Taishō no. 99) #
– 송(宋)나라 천축삼장(天竺三藏)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문 번역 [宋天竺三藏求那跋陁羅 譯]
– 대한민국 문수도량 세속문파 해밀문(解密門) 문주 해밀장(解密長: 속명 법준法俊 필명 다르마슈레야Dharmaśreyaḥ) 한글 번역 및 해설
잡아함경 제3번경 (SĀ-3) :《지명능단경(知明能斷經)》 #
“어떻게 하면 윤회의 고통을 끊을 수 있는가에 대한 가르침”
잡아함경 제3번경 – 지명능단경(知明-能斷經) #
如是我聞:
여시아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一時, 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일시, 불주사위국기수급고독원.
한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물고 계셨다.
爾時, 世尊告諸比丘:
이시, 세존고제비구:
그때 부처님께서 여러 수행승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於色 不知, 不明, 不斷, 不離欲, 則不能斷苦.
어색 부지, 불명, 부단, 불리욕, 즉불능단고.
물질(色)에 대하여 (그 실상을) 알지 못하고, (수행으로) 여실히 통찰하지 못하며, (집착을) 끊지 못하고, (그것을 향한) 욕망을 여의지 못하면, 곧 괴로움을 끊을 수 없다.
如是受, 想, 行, 識不知不明, 不斷不離欲, 則不能斷苦.
여시수, 상, 행, 식부지불명, 부단불리욕, 즉불능단고.
그와 마찬가지로 느낌(受), 생각(想), 의지작용(行), 의식(識)에 대하여 (그 실상을) 알지 못하고, (수행으로) 여실히 통찰하지 못하며, (집착을) 끊지 못하고, (그것을 향한) 욕망을 여의지 못하면, 곧 괴로움을 끊을 수 없다.
▶ 부지(不知) : ‘부지(不知)’란 오온(五蘊)의 실상(實相)에 대한 근본적 인식 부재를 말하며, 이는 곧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와 같은 핵심 이치를 알지 못하는 ‘모름’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모름’은 가르침을 아예 들어본 적이 없는 ‘미문(未聞)’의 상태이거나, 설령 들었더라도 그 의미가 내면에서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무상·고·무아’의 관점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를 모두 포함합니다. 즉, 가르침이 실제 삶의 판단이나 태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함으로써, 결국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근본적인 무명(無明)이 작동하는 상태가 바로 ‘부지’의 핵심입니다. (원어 참고: na jānāti 계열)
▶ 불명(不明) : ‘불명(不明)’이란 가르침을 머리로는 알고 있더라도(知), 수행을 통해 그 앎이 여실(如實)로 확인·체득되지 못한 ‘미증(未證)’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곧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如實智)’가 결핍된 것으로, 초전법륜에서 설명하는 4성제(四聖諦)의 3전(轉), 즉 시전·권전·증전(示轉·勸轉·證轉) 중, 제시(시전)와 권유(권전)를 수용했으나 마지막 ‘증전(證轉)’에 이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 지식이 삶을 변혁하는 힘이 되지 못하여, 실제 삶에서는 과거의 집착과 반응 패턴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반복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원어 참고: na praānāti / na pajānāti 계열)
▶ 부단(不斷) : ‘부단(不斷)’이란 ‘붙잡는 행위’를 끊지 못하는 ‘절단의 실패’를 의미합니다. 이는 ‘명(明)’, 즉 통찰의 힘이 부족하여, 대상을 움켜쥐려는 ‘취(取, upādāna)’, 즉 ‘쥠’의 습관을 행위적으로 절단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 결과, 자극에 다시 노출될 때 자동적-붙잡기 반응(구매, 과시, 자아 서사 등)이 그대로 작동합니다. 이때, 감정을 단순히 ‘억누르며 버티는 것’을 ‘끊음(斷)’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억누르는 것은 반동을 만들 뿐 진정한 절단이 아닙니다. 진정한 ‘단(斷)’은 ‘여실지(如實智)’, 즉 억누르거나 참는 것이 아니라 본래 비었다는 사실 그대로의 견해를 체득하여, 편안히 머무름으로써 이루어지는데, ‘부단’은 바로 이 지혜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원어 참고: na pajahati / pahināti 계열)
▶ 불리욕(不離欲) : ‘불리욕(不離欲)’이란 ‘끌림의 열기’가 식지 않은 ‘냉각의 실패’를 의미합니다. 이는 ‘쥠(取)’을 끊지 못했기에, 그 근원인 ‘갈애(愛, taṇhā)’, 즉 대상에 끌리는 ‘열기’가 식지 않은(avirāga, 냉각, 비라가virāga, 이 성립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 결과, 동일한 자극에도 갈망의 강도와 지속 시간이 줄지 않고, ‘맛의 퇴색’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때, 혐오나 냉소로 반응하는 것을 ‘이욕(離欲)’으로 착각하기 쉬우나, 이는 ‘리욕’이 아니라 또 다른 집착이자 ‘불리욕’의 또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원어 참고: avirāga / avītṛṣṇā 계열)
▶ 원어 메모 (부정형): 不知 = na jānāti (알지 못하다; 인지 부재), 不明 = na prajānāti/na pajānāti (여실히/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다), 不斷 = na pajahati/na pahināti (끊지 못하다/버리지 못하다), 不離欲 = avirāga/avītṛṣṇā (욕심을 여의지 못하다/탐착이 식지 않음).
諸比丘, 於色 若知, 若明, 若斷, 若離欲, 則能斷苦;
제비구, 어색 약지, 약명, 약단, 약리욕, 즉능단고;
비구들이여, 물질(色)에 대하여, 만약 알고, 만약 여실히 통찰하고, 만약 집착을 끊고, 만약 욕망을 여읜다면, 곧 괴로움을 끊을 수 있다.
如是 受, 想, 行, 識, 若知, 若明, 若斷, 若離欲, 則能堪任斷苦.
여시 수, 상, 행, 식, 약지, 약명, 약단, 약리욕, 즉능감임단고.
그와 마찬가지로 느낌(受), 생각(想), 의지작용(行), 의식(識)에 대하여, 만약 알고, 만약 여실히 통찰하고, 만약 집착을 끊고, 만약 욕망을 여읜다면, 곧 괴로움 끊기를 감당해 낼 수 있다.
▶ 지(知) : ‘지(知)’란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와 같은 법(法)의 핵심 틀이 실제로 ‘알아들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가르침을 듣고(聞) 사유하여(思) 그 의미가 내면에서 명확히 연결되어, ‘정견(正見)’의 초기 입력이 완료된 인지적 기반입니다. 그 결과, 말과 행동의 방향을 잃지 않게 되며, 근본적인 ‘모름’의 상태인 ‘부지(不知)’를 극복한 단계입니다. (원어 참고: jānāti 계열)
▶ 명(明) : ‘명(明)’이란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 즉 ‘여실지(如實智)’를 말합니다. 이는 ‘지(知)'(앎)가 수행을 통해 체험적으로 확인되고 검증(證得)되어, ‘있는 그대로’가 확인된 상태입니다. 그 결과, 같은 상황에서도 과거의 집착과 반응 패턴이 실제로 변화하며, 이는 4성제(四聖諦) 3전(轉) 중 마지막 ‘증전(證轉)’에 이른 것과 같습니다. 단순한 분석의 정교함이 아니라, ‘지’가 삶을 변혁하는 지혜가 된 것으로 ‘불명(不明)’의 국면을 극복한 단계입니다. (원어 참고: prajānāti/pajānāti (동사), vidyā (명사))
▶ 단(斷) : ‘단(斷)’이란 ‘끊음’ 또는 ‘버림’을 뜻하며, ‘붙잡는 손을 실제로 내리는’ 행위적 실천이자 절단을 의미합니다. 이는 ‘명(明)’의 통찰력을 기반으로, 대상을 움켜쥐려는 ‘취(取, upādāna)’, 즉 ‘쥠’의 작용을 의지적으로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 결과, 자극에 다시 노출될 때 ‘자동-붙잡기’ 반응이 뚜렷이 약화되거나 중단되는 것으로 판별할 수 있습니다. 이는 반동을 남기는 억압이나 회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실천이며, ‘부단(不斷)’을 극복한 단계입니다. (원어 참고: pajahati/pahināti, chindati 계열; 명사 pahāna)
▶ 리욕(離欲) : ‘리욕(離욕)’이란 ‘욕망을 여읨’, 즉 끌리던 ‘맛’이 스스로 퇴색하는 ‘상태적 냉각(virāga)’을 의미합니다. ‘단(斷)’이 ‘쥠(取)’을 끊는 행위라면, ‘리욕’은 그 근원인 ‘갈애(愛, taṇhā)’, 즉 ‘끌림의 열기’가 식어버린 평온한 상태입니다. 그 결과, 동일한 자극에도 갈망의 강도와 지속 시간이 짧아지고, ‘놓쳐도 손실감이 줄어드는’ 변화로 확인됩니다. 이는 ‘환멸(nibbidā) → 냉각(virāga) → 소멸(nirodha)’로 이어지는 과정의 핵심이며, ‘불리욕(不離欲)’의 상태가 소멸된 단계입니다. (원어 참고: virāga / vītṛṣṇā 계열)
▶ 감임(堪任) : 감임(堪任)은 어떤 과업을 능히 감당할 만한 ‘역량’과 ‘자격’이 갖추어졌음을 선언하는 용어입니다. 본문에서는 지(知), 명(明), 단(斷), 리욕(離欲)이 모두 성립한 뒤에야 수행자가 ‘괴로움의 소멸(斷苦)’이라는 궁극의 과업을 실제로 완수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즉, 지(知)로 바른 방향이 서고, 명(明)으로 여실한 체험적 확인이 이루어지며, 단(斷)으로 ‘붙잡음(取)’이 실제로 끊어지고, 리욕(離欲)으로 ‘갈애(愛)’의 열기가 식어버리면, 수행자는 비로소 괴로움을 실제로 끊어낼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가능하다”는 수준이 아니라, 번뇌에 휘둘리는 피동성을 벗어나 스스로 괴로움의 연쇄를 끊어낼 수 있는 ‘능동적 역량’이 완전히 마련되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참고 원어: 산스크리트 kṣama, 팔리 khamo / bhabbo — ‘능히 감당할 수 있다, 할 수 있다’의 의미장)
▶ 원어 메모 (긍정형): 知 = jānāti (알다; 일반 인지), 明 = prajānāti/pajānāti (여실히/바르게 이해하다), 斷 = pajahati/pahināti (끊다/버리다), 離欲 = virāga/vītarāga (욕심을 여의다/탐착이 식다).
時諸比丘 聞佛所說 歡喜奉行
시제비구 문불소설 환희봉행
이에 수행승들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를 듣고는, 이를 기뻐 받들며 밤낮을 모르고 행하였다.
▶ 수행 요결: 잡아함경 3번경의 수행적 요체: 하류(下游)의 실천이 상류(上流)를 무너뜨리는 길
이 경전이 제시하는 수행의 핵심 요지는, 12연기라는 거대한 괴로움의 고리를 끊어내는 가장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지점을 명확히 짚어준다는 데 있습니다. 경전은 ‘부지(不知)’와 ‘불명(不明)’이라는 인지적 문제를 넘어, ‘부단(不斷)’과 ‘불리욕(不離欲)’이라는, 우리가 일상에서 직접 부딪히는 실천적 결손에 주목합니다. 이는 12연기의 고리 중에서도 가장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 즉 ‘취(取, 집착)’와 ‘애(愛, 갈애)’에 정확히 대응합니다
수행의 실제 운용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수행자는 ‘지(知)’와 ‘명(明)’이라는 통찰의 힘을 바탕으로, ‘단(斷)’을 통해 ‘취(取)’의 움켜쥠을 실제로 절단하고, ‘리욕(離欲)’을 통해 ‘애(愛)’의 근원적 열기를 식혀 버립니다
이 경전이 밝히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 하류(下游)에서의 실천적 성공이 단순한 부분적 해소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취의 소멸’과 ‘애의 소멸’이라는 앞 찰나의 성공은, 뒷 찰나에 계속해서 소멸의 힘을 일으키는 강력한 ‘소멸의 연쇄적 관성(慣性)’을 만들어냅니다
이 ‘소멸의 관성’이야말로 괴로움의 뿌리를 뽑는 핵심 동력입니다. 이 힘은 (수→촉→육입→명색→식→행)으로 이어지는 12연기의 고리를 “역관(逆觀)하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모든 문제의 뿌리인 상류(上流)의 ‘무명(無明)’을 완전히 타파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는 것이 이 경의 포인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류의 실천(‘단’과 ‘리욕’)이 “상류의 근원(‘무명’)을 무너뜨려, 명을 통해 환멸연기가 시작되게 하는” 구체적인 운용 방식입니다. 무명이 소멸하여 ‘명(明)’이 드러날 때, 수행자는 비로소 법계가 본래 공(空)한 한 모습임을 깨닫는 구경각(究竟覺)에 이르며, 이것이 곧 ‘능단고(能斷苦)’, 즉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입니다.
▶ 우선 ‘무상고공비아’라는 지와 명을 얻고서, 거기에 단과 리욕이라는 실천적 경험 데이터를 흡수하며, 나아가 관성으로서 차례차례 역관하여 12연기의 요소들을 모두 타파했기 때문에, 지와 명의 힘이 그대로 생로병사고의 하류까지 흘러 환멸연기를 만들어내며, 무생로병사고를 만들어 해탈케 하는 것입니다.